소담스런나의 맛집

소담스런 나의 맛집 "동원"

강릉 예술인미식회 2017. 김수민

벽은 한지로 되어 있고, 메뉴도 한지 위에 쓰여 있다. 이곳저곳에 마른 꽃이 있고, 병풍도 서 있고, 짚으로 만든 발이 늘어져 있고, 초충도 그림이 있다. 식탁 위에 있는 휴지는 솔방으로 눌러놓았다. 마치 할머니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벽에는 다양한 글이 붙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당신께, 한 상 가득 자연을 담아 정성을 담아 건강을 담아, 두 손 모아 바칩니다. 늘 고맙습니다.'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밥은 사랑이다.'라고 써놓은 것도 있다.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주용합니다.'라고 마더테레사가 말한 것을 옮겨 적은 것도 있다. 

 언젠가 다들 밥을 먹으러 가고 나 혼자 손가락집에 남아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동원에 걸린 글귀를 보내줬다.

'끼니를 거르는 이는 없는지?'

 주인분이 음식과 손님을 얼마나 따듯하게 대하는지 느낄 수 있다.

동원식당은 두 공간으로 분리돼 있다. 방 안쪽은 좌식, 바깥쪽은 입식이다. 오늘 같은 겨울철이면 방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는 보일러를 켜주시고, 바깥에 있을 땐 난로를 피워주신다. 손가락집이 옛날 건물이라 외풍이 심해, 추우면 이렇게 밥 먹을 때라도 따뜻한 곳으로 피신해온다. 밥은 다 먹고 나서도 나가시 싫어 좀 더 앉아 있는다. 얼어 있던 얼굴이 동원을 나갈 때면 빨갛게 달아올라있기도 하다.

식당에 들어가서 앉으면 주인분이 작은 도자기 주전자에 구수하고 따뜻한 차를 내오신다. 우엉차거나 둥글레차일 때도 있고, 메밀차일 때도 있다. 구수하고 심심한 맛이 나는 차를 좋아하는 나는 차를 내오실 때부터 감격이었다. 주인분은 밥이나 차를 내오실 때마다 항상 소개를 해주신다.

"이건 우엉차에요", "오늘은 돋나물이랑 냉이를 무쳤어요. 향기로울 거에요." 라고 말씀하신다. 음식을 내오시며 조곤조곤 음식 설명을 하시는 사장님을 처음 봤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매번 갔을 때마다 설명해주시는 걸 들으면 애정을 갖고 음식을 만드신다는 게 느껴진다. 동원식당에는 메뉴가 세 가지다.

'자연, 마음을 담은 밥상'
'겨울 별미, 정성을 담은 손만두국'
'추엇을 담은 동원칼국수'

아무래도 가장 많이 먹는 건 '자연, 마음을 담은 밥상'이다. 메뉴 옆에는 소개글이 있다. "자연, 마음을 담은 밥상은 사랑으로 만든 제철 자연식 건강밥상입니다. 두 손 모아." 받침 위에 소담스럽게 밥과 반찬, 국이 담겨 나온다.

 여름에는 소쿠리 쟁반에 올라오고 겨울에는 짚으로 짜인 받침대에 국과 반찬이 올라가 있다. 아기자기한 개인용 접시에 반찬이 일곱 개가 나온다. 어떤 여름에는 소쿠리 위에 큼지막한 호박잎이 접시를 대신해서 반찬들을 담고 있었다. 그날그날 나오는 식재료로 음식을 해서 반찬이 매일 다르다. 어느 날은 시금치, 어느 날은 곰취, 어느 날은 소세지볶음, 어느 날은 파무침, 매실장아찌나 오이김치 같이 어머니가 지금 막 부엌에서 직접 만들어주신 것 같은 반찬들이다.

미역국, 된장국, 감자국이나 김칫국 모두 자극적이지 않은 가정식이다. 밥 한그릇을 다 먹으면 반찬이 딱 맞다.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최고의 밥상이다.

세 손가락 사람들이 모이면 보통 시내에서 밥을 먹는다. 편의점 음식, 햄버거, 파스타, 피자, 도시락, 라면, 김밥 등이 우리의 주식이다. 맵거나 달거나 짠, 강렬한 음식을 자주 먹는다. 작업실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극적인 음식이 아닌 정성스런 백반을 먹을 수 있다니!

'자연,마음을 담은 밥상'의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세손가락에 두 세 명은 채식주의를 지향한다. 나 또한 일부러 고기를 먹으러 가거나, 생선을 먹지는 않는다. 시내에서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찾는 건 너무 어렵다. 김치찌개 하나만 먹어도 참치가 들어있거나 햄이 들어있다. 하지만 동원에서는 나물, 된장국, 버섯조림과 같이 채식주의자드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나온다. 물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지금 외관 간판에는 '동원'이라고 되어있지만, 원래 이름은 '동원칼국수'였다. 그만큼 원래는 칼국수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식당이다. 심심하지도 짜지도 않고, 간이 딱 맞고, 다 먹고 나면 만족스럽게 배부르다.

 만둣국은 직접 빚어서 만드시는 듯, 꼭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손만두 맛이 난다. 나는 근래에 알았지만, 동원은 30년 넘게 대를 이어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어른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한다. 카운터에는 글이 들어간 액자가 세워져 있다. 

'아담한 공간에서 분위기도 있고,
편안한 음악과 정갈한 식사로 몸과 마음이 치유되며,
북적이지 않아 우리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 생각됩니다.'

라고 자못 자랑스럽게 식당을 소개했다. 나는 이 글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원에 아주 잘 어울리는 글귀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소담스런 동원이 오래오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예술인미식회 2017. 예술인의 이야기가 있는 강릉맛집
- 김수민. 동원식당